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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와 인문학/인문 서적 리뷰

프란츠 카프카 - 소송

by 시와강아지 2020. 10. 6.

이 책을 두고 실존주의 문학입네, 

한 인간의 고뇌를 그렸네 

하는 식의 소개를 하는 것은 

카프카에 대한 예의가 아니다.


생전 그의 실제 모습처럼

페이소스 가득한 위트를 보이거나


그저 또 다른 나를 조금이나마 발견했다 말하면

그나마 그 편이 낫지 않을까


카프카는 백년 전 체코 사람으로,

독일식 선진 교육을 받으며 

언제나 두려운 존재였던 아버지의 감시 하에

어쩔 수 없이 남들이 선망하는 직업을 택했다.


우리나라로 따지면 일제 교육을 받아

동그리 안경을 쓰고 종로를 활보하는

커피를 마시는 지식인 계층 쯤 되었으려나


카프카는 어디까지나 중간자였다.

선진 교육을 받았고

독일어를 사용할 줄 알았지만

그는 체코계 유대인일 뿐이었고

보험사에 일하며 서민들의 사건, 사고에 관여했다


수직 세상은 답답한 반투막 같은 유리천장이었고

건장한 아버지로 상징되는 벽은 수평적 세상을 

가로막았다.


3차원을 넘은 4차원적 사고를 소설로 옮기는 일상,

'변신'과 같은 소설은 그래서 시작되었을지도..




경제적, 계층적으로는 적당히 숨통을 틔웠으나

더 높은 권위에게 굴복하지는 않으며

그 어두운 세계를 어느 정도 파악할 수는 있는 

중간자


또 그렇다고 

종로 하천에 인분이 떠다니는 시절에

버지니아 울프를 논하는 박인환 시인처럼

현학적인(현재어: 중2병적인) 지식인 행세를

하지도 않았다.


그저 중간자의 위치에서 

중간자로서의 답답함과 위협감과

요동하는 세상을 느끼고 불안해 했으리라




소설의 요제프 K는 서른 살의 나이에 

소송의 피고인이 된다. 

이유는 커녕 원고인이 누구인지조차 알 수 없다.


처음엔 거의 신경을 쓰지 않다가

변호사를 고용하며

서서히 예심 판사, 소변호사, 대변호사 등으로 

나뉘는 권력의 피라미드를 발견하게 된다.


상위의 권력은 알 수 조차 

그 힘과 규모를 짐작할 수도 없다.


그렇게 1년의 시간이 지나고

K는 담담하게 익명의 두 남자에게 처형 당한다.




그의 소설을 실존주의라고 하는 것은

흥미로운 로맨스나 엄한 이야기나 다루는 

시나리오가 아니라는 점에서는 타당하다.


삶은 무서운 실존(실전)이니까


카프카가 느끼는 위협적인 세상은

100년이 지난 지금 더욱 날조되었고


아주 세련되고 희망찬 메세지로 

본 모습은 말끔하게 감추고 있으며


두려움을 느끼는 주체인 '나'조차

날조된 인격을 가지도록 교육되어서

카프카 만큼의 두려움은 느낄 수도 없게 되었다.


인스타 갬성팔이 또는 

주식 투자자, 부동산 투기꾼으로 전락한 우리..


시인의 감수성을 가지려는 건 이 때문이다.

요즘 세상에 시인이 되는 건 

더 도전적인 일이 되어버렸기 때문에

더 도전하고 싶달까  


카프카의 소설에서 느껴야 하는 감정을 

하나만 꼽으라면

그것은 "두려움"


상징적인 단 하나의 단어를 떠올려야 한다면

그것은 견고한 "벽"


해석은 다양하지만

두려움을 느끼는 편도체는 수백만년 전부터 

하나였기에


책을 읽은 나는 되물어야 했다.


두렵지 않은가. 


정말 이 세상에 자신만만한가.

두렵지 않을 만큼만 살아내고 있진 않은가.


그 누구도 다치치 않게 자신만만해 할 수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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