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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와 인문학/인문 서적 리뷰

무라카미 하루키 - 도시와 그 불확실한 벽

by 시와강아지 2024. 2. 5.

 

    이 이야기는 하루키가 30대 시절 한 잡지사에 기고했던 소설을 모티프로 한다. 그의 베스트셀러들이 수십 개의 언어로 퍼져 나가는 동안에도 그는 이 이야기의 이상적인 결론을 고민했다. 당시 <세계의 끝과 하드보일드 원더랜드>라는 작품으로 하나의 전개를 완성했지만, 그는 이 이야기가 또 다른 방식으로도 전개되어야 한다고 믿었다. 이야기가 맺지 못한 결론은 30년이 넘는 시간동안 그의 목에 가시처럼 거슬렸다고 한다.

    이후 코로나 시국이 되어서야 이야기는 다시 동력을 얻기 시작했다. 하루키는 '순환'을 모티프로 결론을 써 내려갔고, 원고지는 예상보다 길어졌다. 긴 시간에 걸쳐 part 2, 3가 완성되었고 이야기의 결론은 순환의 회귀점에 닿았다.
    소년이었던 주인공이 어느새 사십 대 중반의 아저씨가 되어 '옐로 서브마린 소년'을 자신의 일부로 받아들인다. '꿈 읽는 이'로서, '그림자가 없는 도시의 시민'으로서 주인공이 떠난 자리는 '옐로 서브마린 소년'으로 대체된다. 한편 현실 세계에서는 도서관장 '고야쓰 씨'가 아저씨가 된 주인공을 후임으로 점지한다. 
    고야쓰 씨, 주인공, 옐로 서브마린 소년은 '현실'과 '그림자 없는 도시'의 주민이자, 그 경계를 허무는 개구부이기도 하다. 모든 생명체와 무기물(움직이는 벽과 같은)이 꽉 짜인 채 빈틈 하나 없어 보이는 도시를 허무는 것은 결국 주인공을 포함한 '사람'이다. 사람은 주체도 구멍도 될 수 있다. 진정으로 원한다면 누구나 그림자를 벗고 불완전한 벽의 도시로 향할 수 있으며, 다시 돌아올 수도 있다. 물론 그 비밀은 '진심'과 '사랑'에 있다. 도시의 벽으로부터 자유롭기 위해서는 진심으로 원해야 하며, 돌아가는 세계에 자신을 알아줄 이가 남아있다는 사실을 굳게 믿어야 한다. 
    '도시'는 꽉 막힌 것, 부자유를 상징한다면, '벽'은 자유를 향한 통과제의를 상징한다. 기어이 벽을 깨부수는 것은 바로 '진심(원하기)'과 '사랑(지지자)'이다. 즉 "도시과 그 불확실한 벽"이라는 제목의 방점은 "불확실한"에 찍힌다. 도시(부자유)를 불확실하게 하는(깨부수는) 것은 사람의 진심과 사랑이다. 진심과 사랑의 이야기는 언제나 순환으로 회귀한다. 말년의 하루키는 반드시 이 이야기를 완성하고 싶었다. 이야기를 완성할 때가 되었다고 느꼈다. 그는 느지막이 인간애에 도달한 어떤 할아버지처럼 인류의 순환을 꿈꾸는지도 모른다. 
 
 
_글에서 발췌
    소년은 작지만 힘 있게 고개를 끄덕였다. "맞습니다. 우리는 말하자면 허공에 떠 있는 상태입니다. 붙잡을 것이 없습니다. 하지만 아직 낙하하진 않았어요. 낙하가 시작되려면 시간의 흐름이 필요합니다. 시간이 그 자리에 정지해 있으면, 우리도 계속 허공에 뜬 상태를 유지합니다."
    "그리고 이 도시에는 시간이 존재하지 않는다."
    소년은 고개를 저었다. "이 도시에도 시간은 존재합니다. 다만 의미가 없을 뿐이죠. 결과적으로는 같은 얘기지만."

    나는 말했다. "그렇지만 어떤 계기로 시간이 다시 움직이기 시작하면 우리는 그 높이에서 떨어지게 돼. 그 결과는 치명적일지도 모르고."
    "아마도요." 옐로 서브마린 소년은 바로 긍정했다.
    "아마 낙하를 막을 방법은 찾을 수 없겠죠." 소년은 말했다.  "하지만 치명적인 결과를 피할 방법이 없진 않아요."
    "이를 테면 어떤 거지?"
    "믿는 겁니다."
    "무엇을 믿는데?"
    "누군가가 땅에서 당신을 받아주리란 것을요. 진심으로 그렇게 믿는 겁니다. 보류하지 않고, 온전히, 무조건적으로."
 
_작가의 말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가 말한 것처럼 한 작가가 일생 동안 진지하게 쓸 수 있는 이야기는 기본적으로 그 수가 제한되어 있다. 우리는 그 제한된 수의 모티프를 갖은 수단을 사용해 여러 가지 형태로 바꿔나갈 뿐이다.
    요컨대 진실이란 것은 일정한 어떤 정지 속이 아니라, 부단한 이행=이동하는 형체 안에 있다. 그게 이야기라는 것의 진수가 아닐까. 나는 그렇게 생각할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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