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시와 강아지입니다.
오늘은 소설가 커트 보네거트를 읽어볼 예정입니다.
보네거트라는 인물을 검색할 때 가장 많이 떠오르는 연관 키워드는 단연 '블랙 유머'입니다.
블랙? 까만색의 웃음?
시크하고 세련된 웃음?
블랙 유머를 결정짓는 부분은 아마 '대세를 비웃는 독립자적인 태도'일 겁니다.
"별 것도 아닌 일에 참 난리들이군. 꼴 사납군 그래."라는 기조로 읽히죠.
보네거트의 소설은 흥미롭지만 '시커멓고 쓰디 쓴 풍자'를 그린다는 점에선 양가적인 감정을 갖게 합니다.
작가의 말이 지금의 나를 비웃는다고 느껴지면 다소 서늘할 것이고요.
내가 품었던 냉철한 시선에 동감해준다면 통쾌함마저 느낄 것입니다.
소설 『갈라파고스』에서는 귀신이 되어 구천을 떠도는 '내'가 1백만 년 전의 시대를 묘사합니다.
1백만 년 전의 그 시대는 바로 1980년대입니다.
다시 말해 '나'는 서기 1,001,980년에 있는 것이죠.
이제 막 출항을 앞둔 '다윈 호'는 1986년 11월 28일 금요일 정오에 출항할 예정이었다.
때는 1백만 년 전이었다.
'나'(작가)는 백만년 전 인간사의 발달을 다음과 같이 바라봅니다.
"인류의 진화 과정에서 3킬로그램짜리 두뇌란 치명적 결함이 아니었을까?"
"과거 우리가 곳곳에서 보고 들었던 죄악의 원천을 찾는다면, 지나치게 정교한 우리의 신경 회로말고 달리 무엇이 있었을까?"
자문자답이 되겠지만, 나의 대답은 이렇다.
"다른 원천은 없었다. 지구는 아주 순결한 행성이었다. 그들 커다란 뇌만 빼면."
1980년대 인간은 배가 좌초한 섬에 남은 사람들을 제외하곤 모두 멸종합니다.
'내'가 보기에 인류 멸종의 가장 큰 패인은 다름 아닌 인간의 '큰' 뇌였죠. 하지만 서기 1,001,980년의 인간은 생물학적으로 퇴화됩니다. 하지만 평화와 존속성 측면에선 오히려 1백만 년 전보다 나아졌죠.
사실 당시에는 그저 견해에 지나지 않은 것들이 마치 확고한 증거처럼 사람들의 행위를 지배하다가도 어느 날 갑자기 한순간에 폐기되기 일쑤였다. ..에콰도르 지폐는 어느 순간엔 의식주와 교환되다가 다음 순간 새장 바닥의 깔개로 추락할 수 있었고, 우주는 어느 순간엔 전능한 신의 창조물이었다가 다음 순간 느닷없는 대폭발의 산물로 돌변할 수 있었다. 이런 예야 부지기수로 많았다.
그러나 1백만 년이 지난 오늘날은 두뇌의 힘이 약화된 덕분에 그 도깨비 같은 견해라는 것을 좇느라 생활을 등한히 하는 일이 없게 되었다.
부와 식량의 분배 문제에 관한 첨언도 빼놓지 않습니다.
지구상의 인류에게는 여전히 막대한 양의 식량과 연료가 남아 있는데도 한쪽에서는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인간들이 굶어 죽어가고 있었다...
..그런데 이 기근은 베토벤 9번 교향곡과 마찬가지로 순전히 과대한 뇌의 산물이었다. 모든 것이 사람들의 머리에서 비롯되었다. 사람들은 그저 종이로 된 재산에 대한 견해를 바꾼 것에 불과했지만, 그 실제적 귀결은 지구가 룩셈부르크만한 운석에 부딪혀 궤도 밖으로 튕겨나가는 것보다 나을 것이 없었다.
1980년대 인간들도 그 커다란 뇌로 자신들의 문제를 자각하고 있었습니다.
옛 인류가 자랑스럽게 여길 만한 일이 한 가지 있기는 하다. 자기네 뇌가 무책임하고 믿을 수 없으며 소름끼치도록 위험하고 현실감각이 전혀 없다는, 한마디로 완전히 엉터리라고 말하는 사람이 점차 늘어나고 있었다는 사실이다.
예컨대 호텔 엘도라도라는 소우주만 보더라도, 모든 식사를 자기방에서 하고 있던 미망인 메리는 자살하라는 뇌의 충고를 탓하며 혼잣말로 자기 뇌를 저주하고 있었다.
그러니까 1980년대(1백만년 전)의 인류는
커다란 뇌에 의해 발전하고
커다란 뇌에 의해 파멸하게 되며
커다란 뇌에 의해 파멸하는 과정을 지켜볼 수 밖에 없습니다.
미망인 '메리'가 호텔 방에서 자살의 충동을 느낀 것은 정말이지 '현대적'입니다.
'충분히 교활해진 뇌'와 '개인의 지나친 고립'이 만났을 때 얼마나 엉터리 같은 결론이 나올 수 있는지, 우린 매일 뉴스를 통해 깨닫고 있죠.
우린 300년 전 유럽의 어느 농부가 평생 동안 접하는 양의 정보를 '하루' 안에 보고 듣는다고 해요.
말들이 참 많고, 꽤나 설득력 있는 논리도 참 많습니다.
당시엔 사람들이 얼마나 말이 많았던지! 모두가 온종일 계속 떠들어댔다.
그러나 '진심 없는' 논리, 혹은 '목적 있는' 논리는 궤변이 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주식 투자 종목이 상승한다는 전문가의 논리는 '결과와 상관없이 듣기 좋게' 느껴집니다.
우리 사회의 중대한 의사 결정은 수많은 시선과 논리를 거치지만, 의외로 경험적 충동에 영향을 받습니다.
사회는 결국 할 수 밖에 없는 선택을 하게 됩니다. 코로나 사태를 타개하는 데 미래 세대의 재산을 당겨 쓰는 것처럼 말이죠.
1백만 년 전 힘 있는 자리를 차지한 병적 인격체들이 대개 그랬듯, 그 역시 거의 무슨 일이든 별 생각 없이 충동에 따라 할 수 있었다. 자신의 행동에 대한 합리적인 이유는 한가할 때 고안하여 사후에 제시하는 것이 보통이었다.
『갈라파고스』는 노아의 방주 모티브와 매우 유사한 줄거리를 갖습니다. 기존의 인류는 멸종하고, 소수의 인원이 배를 타고 좌초한 섬에서 인류가 재탄생합니다.
배에 탄 인물들 각각의 캐릭터와 행동들이 묘사되지만, 작가는 모두에게 일정한 거리를 둡니다. 사실 인물들은 이 소설에서 크게 중요하지 않습니다. 작가는 '나'를 통해 자신의 생각을 말할 뿐이죠.
『갈라파고스』는 촌철살인적이고 흥미롭지만, 이야기 구성이 섬세하지는 않습니다.
그렇게 때문에 『갈라파고스』를 구성하는 키워드 역시 '블랙 유머스럽게' 어렵지 않게 노출됩니다.
"쓸 데 없이 크기만 한 두뇌"
문제는.. 인간의 두뇌가 너무 크기만 할 뿐 진실하지도 실제적이지도 못했다는 데 있었다.
..1백만 년 전만 해도, 인간은 뭔가 불리려는 그 불가능한 꿈들에 왜 그리도 골몰했던지!
소설 말미에 나오는 '나'의 아버지 말씀에서 작가는 앞 부분에서 숨겨왔던 속내를 꺼내놓듯 열변을 토합니다.
"레온!(소설의 '나') 레온! 인간에 대해 알면 알수록 정나미가 떨어질 뿐이야. 너희 나라에서 제일 똑똑하다는 자들이 너를 그 끝이 없고 인정도 없고 참혹하고 결국에는 의미도 없는 전쟁터에 보낸 것만으로도 인간 본성에 대한 통찰은 이후로는 영원히 필요없을 만큼 얻지 않았느냐?
꼭 내가 말해야 하겠니? 네가 갈수록 더 궁금해 하는, 그 대단하다는 동물들이 바로 이 순간에도 모든 것을 날려버릴 수 있는 무기들을 여차하면 발사할 태세를 갖추고서 의기양양해 하고 있다는 걸 말이다.
꼭 내가 말해야 하겠니? 한때 그토록 아름답고 풍요롭던 이 행성이 이제는 해부실에 들어온 불쌍한 로이 헵번의 썩은 몸뚱어리 꼴이 되어 있다는 걸 말이다. 네가 그토록 애틋해 하는 인간들의 도시는 또 어떻고? 오로지 성장을 위한 성장에 함몰되어 모든 자원을 낭비하고 오염시키는 그 꼬락서니가 꼭 암세포를 닮지 않았더냐?
꼭 내가 말해야 하겠니? 그 대단하다는 동물들이 이제 저희 손자들의 생존조차 확신할 수 없게 되었다는 걸 말이다. 인간이 다음 세기에 가서도 먹고 즐길 것이 남아 있다면 그것 자체가 기적이 아니겠느냐?
레온, 인류는 이제 이 저주받은 배에 탄 사람들이나 다름없어. 지도자란 것들이 한결같이 해도도 나침반도 없이 그저 사사건건 자존심이나 앞세우며 배를 몰아가는 이 배 선장 같으니 말이다."
이상, 시와 강아지였습니다.
'시와 인문학 > 인문 서적 리뷰' 카테고리의 다른 글
무라카미 하루키 - 도시와 그 불확실한 벽 (2) | 2024.02.05 |
---|---|
장 자크 루소 - 인간 불평등 기원론 (0) | 2021.01.03 |
밀란 쿤데라 - 무의미의 축제 (0) | 2020.12.17 |
무라카미 하루키 - 해변의 카프카 (0) | 2020.12.10 |
강신주 - 한 공기의 사랑, 아낌의 인문학 (0) | 2020.11.07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