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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와 인문학/시집 읽기

한강 시인 - 서랍에 저녁을 넣어 두었다

by 시와강아지 2020. 11. 12.

안녕하세요. 시와 강아지입니다.


영화 '신세계'의 명대사가 있죠.


"드루와, 드루와."


영화 속 맥락과는 다르게 

저는 이 대사가 극중 화자 '정청'의 포용성을 

보여준다고 여겼습니다.


정말이지 정청은 이자성의 비밀을 알고도 

끝까지 함구했죠.



포용하는 자가 발하는 위압감이 있습니다.


"무엇이든 말해도 좋아. 내가 다 들어줄게."

"덤벼, 받아줄게."


가학성의 이 말은 대개 공포의 대상이 되지만

문학의 영역에서 이 말은 한없이 큰 위로의 주체가 됩니다.





오늘의 주인공, 소설가이기도 한 시인 한강은

바로 이 포용하는 자가 뿜는 대담성을 

매 작품마다 담아냅니다. 


그래서 그녀는 아직, 

더 "피 흘릴" 의지가 있습니다.


.

.

.


새벽에 들은 노래 3


나는 지금 

피지 않아도 좋은 꽃봉오리거나

이미 꽃잎 진

꽃대궁

이렇게 한 계절 흘러가도 좋다


누군가는

목을 매달았다 하고

누군가는

제 이름을 잊었다 한다

그렇게 한 계절 흘러가도 좋다


새벽은

푸르고

희끗한 나무들은

속까지 얼진 않았다


고개를 들고 나는

찬 불덩이 같은 해가

하늘을 다 긋고 지나갈 때까지

두 눈이 채 씻기지 않았다


다시 

견디기 힘든

달이 뜬다


다시

아문 데가 

벌어진다


이렇게 한 계절 

더 피 흘려도 좋다



'푸른 새벽, 나무가 희끗한 계절'이지만

나무의 속까지 얼진 않습니다.


심지어 '다시 아문 데가 벌어진다 해도'

'두 눈이 채 씻기지 않은' 채로..


우린 이 계절을 버티고 

새로운 계절을 맞이하게 될 것입니다.



올 겨울을 텅 비우고 나면


다시 차오르는 무언가를 느끼게 되겠죠.



눈물이 찾아올 때 내 몸은텅 빈 항아리가 되지


거리 한가운데에서 얼굴을 가리고 울어보았지

믿을 수 없었어. 아직 눈물이 남아 있었다니


눈물이 찾아올 때 내 몸은 텅 빈 항아리가 되지

선 채로 기다렸어. 그득 차오르기를


모르겠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나를 스쳐갔는지

거리 거리, 골목 골목으로 흘러갔는지


누군가 내 몸을 두드렸다면 놀랐을 거야

누군가 귀 기울였다면 놀랐을 거야

검은 물소리가 울렸을 테니까

깊은 물소리가 울렸을 테니까

둥글게

더 둥글게

파문이 번졌을 테니까


믿을 수 없었어, 아직 눈물이 남아 있었다니

알 수 없었어, 더는 아무것도 두렵지 않다니


거리 한가운데에서 혼자 걷고 있을 때였지

그렇게 영원히 죽었어, 내 가슴에서 당신은


거리 한가운데에서 혼자 걷고 있을 때였지

그렇게 다시 깨어났어, 내 가슴에서 생명은



이 겨울은 누군가에겐 난방비 걱정을 하는 추위로 보이거나


누군가에겐 이별을 더욱 차게 실감하는 계절이


어떤 이에겐 새로운 변화를 꾀하는 월동의 시간이 될 수도 있겠습니다.



그렇게 우리는 비워집니다.


오해는 하지 말아요.


다시 채워지기 위해 비워지는 건 아닐 겁니다.

비워지고 나면 다시 차오른다는 건

우리가 원해서라기보다는 

섭리에 가까운 것일 테니까요



해부극장


한 해골이

비스듬히 비석에 기대어 서서

비석 위에 놓인 다른 해골의 이마에 

손을 얹고 있다


섬세한 

잔뼈들로 이루어진 손

그토록 조심스럽게

가지런히 펼쳐진 손


안구가 뚫린 텅 빈 두 눈이

안구가 뚫린 텅 빈 두 눈을 들여다본다


(우린 마주 볼 눈이 없는걸.)

(괜찮아, 이렇게 좀더 있자.)


한강 시인의 소설과 시에는

흰색의 소복.. 잔뼈.. 말라붙은 앙상한 가지..와 같은

모두 태워버린 다음에야 볼 수 있는 메마른 이미지가 주를 이룹니다.


그렇게 모든 것을 태워버린 우리

무엇에 타버렸는지도 모르지만

어찌됐건 서로를 마주 볼 눈조차 잃은 우리


그럼에도 손을 얹어 서로를 쓰다듬어야지요.

텅빈 나의 눈으로 당신의 눈을 들여다봐야지요.


현 시대의 사랑은 지푸라기에서 시작하니까요.

메마른 뼈로 마찰된 가녀린 불꽃이니까요.



그녀는 슬픔은 더욱 짙게

행복도 짙은 슬픔과 같게 만드는

흑백 필름을 떠올립니다.



저녁의 소묘


어떤 저녁은 피투성이

(어떤 새벽이 그런 것처럼)


가끔은 우리 눈이 흑백 렌즈였으면


흑과 백

그 사이 수없는 음영을 따라


어둠이 주섬주섬 얇은 남루들을 껴입고


외등을 피해 걸어오는 사람의

평화도,

오랜 지옥도,

비슷하게 희끗한 표정으로 읽히도록


외등은 희고


외등 갓의 바깥은 침묵하며 잿빛이도록


그의 눈을 적신 것은

조용히, 검게 흘러내리도록



왜 시대가 우울한 흑백으로 보이는지요

그녀에게 묻는다면

아마

희미한 미소만을 보일지도 모릅니다.


1차 세계대전 이후 호황기에 

신나는 스윙재즈가 유행했다면


그로테스크, 아방가르드, 포스트모던, 

화폐가치 붕괴의 시대, 

동시에 화폐만능주의의 시대..


이 모든 걸 아우르는 현 시대는

어떤 노래가 유행해야 할까요..



회복과 성장이란 말이

점점 하염없는 의미만을 지니게 되진 않을까요.



회복기의 노래


이제 

살아가는 일은 무엇일까


물으며 누워 있을 때

얼굴에 햇빛이 내렸다


빛이 지나갈 때까지

눈을 감고 있었다

가만히




.

.

.

"시란, 다르게 또 같이 있을 수 있다는 희망"


시를 전하는 시와 강아지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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