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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와 인문학/시집 읽기

이선영 시인 - 60조각의 비가

by 시와강아지 2020. 11. 16.

안녕하세요. 시와 강아지입니다.



시는 지극히 개인적인 시선이지만


일상을 살았던 누군가가 

직접 캐낸 것이니만큼


자잘하게나마 지구를 가득 채우고 있던 것들의

새로운 발견이라고 할 수도 있겠습니다.



새롭다니요..

하늘 아래 새로운 것이 있었다니요..


그렇습니다.

그것은 새로운 것이 아니라

'숨겨져 있던' 것입니다.

.

.

화려한 광택의 2019년식 건물 앞, 

원색의 색상에 가려져있던, 

그러나 언제나 떠다니고 있었던 먼지들


절간의 바람에 흔들리는 풍경(종) 소리

그 소리에 때 맞춰 고개를 돌리는 

절 강아지 황구의 쫑긋 선 귀 모양


배가 침몰하던 순간 

충격으로 전해진 파장들이 수년이 지나도록 남아있고

그 여파의 여파까지도 이용하는 

광고와 미디어, 그리고 세력들

그 사이 소리없이 어디선가 

한번 더 죽어가고 있을 어떤 가족의 식사

.

.


시가 아니라면 느낄 길이 

적어도 저에게는 단 하나도 없겠습니다.


오늘의 이선영 시인은 비가(歌)라는 말을

무려 시집의 제목에 넣었습니다.


그녀가 발견한 세상의 슬픔들은

또 어디선가 가려져 있던 것일 겁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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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아노 비가


어쩌면 저 검은 피아노처럼

모두가 같은 답을 향하여 가고 있는 것은 아니리라

정해진 답은 묻는 자만의 바람이며

하나의 답이란 편의를 위한 것일 뿐

가능한 여러 개의 답이 때로 제 덫을 삼키며 토해 낸 여우구슬일지라도


저 검은 피아노가 울린 것은 오래전 일이다

입 다문 피아노는 그저 소리의 여운을 간직한

칠흑의 순수로 눈앞을 채운다

처음 피아노가 집에 들어오던 날에는

묵음의 뒷날을 알려 하지 않았다

울려야 할 미래가 남아 있는 것이라면

피아노의 긴 묵묵부답도 오답은 아닐 것이다

제 속에서 끊임없이 반추되는 울림들을 그는 듣고 있지 않을 텐가


검은 피아노가 여전히 피아노라 불리는 것은 오답이 아니다

그의 다문 입을 궁금해하지 않았고 건반의 울림에 귀기울이려 하지 않았을 뿐

피아노를 버리거나 버리지 않는 것은 남겨진 선택이지만

버려지는 이유도 하릴없는 피아노이기 때문이고

버려지지 않는 이유도 끝끝내 피아노이기 때문이리라


지금 변변히 울리지 못한다고 해서

울렸던 그의 지난날조차 잊혀져야 한다는 말이 답이 될 수는 없다

모든 피아노가 갈채의 무대를 꿈꾸는 것만은 아니듯이

제 소리만큼의 울림과 결절을 껴안으며 피아노가 된다

저 검다란 피아노가 먼지를 벗 삼아 내려앉은 자리는

그가 찾았더나 아직 찾고 있는 중인

온갖 답들을 향한 질문으로 뜨거울 게다



그녀의 피아노는 울린지 오래입니다.

피아노가 처음 집으로 들어오던 날의 설렘은 

온데 간데 없이

덮개 위에는 먼지만 쌓여갑니다.


하지만 그녀는 울리지 않는 피아노가 

제 속으로 끊임없이 반추하고 있을 선율을 

떠올립니다.


그 선율이 더 이상 새로울 게 없는 

지난 날의 리듬일 뿐이라면 

그것은 틀림없는 '비가'이겠지요.


지금 가진 것만으로 끊임없이 길을 찾고 헤메이길 반복하는 한 여름의 젊음과 같을까요.



슬픔의 대상은 '유한한 젊음'에도

'낡고 시들어가는 가게들'에도 있습니다.



남현동 비가


또봉이통닭은 할아버지 할머니가 짝꿍인 또봉이통닭

또봉이는 짝잃은 할아버지 혼자 지키는 또봉이

낙원떡집은 가래떡이 말랑말랑한 낙원떡집

낙원떡집은 아직 낙원이 되기에는 먼먼 낙원떡집

일오삼마트는 이름이 재밌는 일오삼마트

일오삼마트는 '일'자의 반쯤이 부서져 나간 오삼마트

명품세탁은 아침 8시면 띵동하는 명품세탁

품세탁은 맡기곤 찾아가지 않는 미아보호세탁

향림원은 탕수육이 바삭바삭 향림원

향림원은 향기로운 숲이 아닌 콘크리트 건물 2층

아가씨생선가게는 어느새 아줌마가 늘 활기찬 생선가게

아가씨생선가게는 여릿한 물고기일랑 눈씻고 봐도 없는 비릿한 가게

이렇게 먹고사는 나는 오늘도 배달 201동 902호

나는 세상을 배달받으며 201동 902호에 갇혀있거나 숨어 있는 사람


날 밝으면 제자리에 있는 평화로다

날 저무니 휘어진 뼈가 저며 오누나 



슬픔을 더 슬프게 만드는 것은

억지로 웃어야 하는 일들 때문일 겁니다.


할머니를 보내고 혼자가 된 할아버지가 운영하는 통닭집의 이름은 여전히 아기자기합니다.


간판은 신장개업의 꿈을 잃고 부서져있으며

사람의 생각마저 콘크리트 같은 생각에 갇히고 맙니다.


시인은 아파트에서 창문으로 바라본 간판들이 슬펐던 걸까요. 아니면 성취감없는 일상을 보내다 잠시 비뚤어진 마음을 세상에 투사했던 걸까요.



염세적이었던 시인의 마음도

다시 일상의 신명나는 슬픔으로 돌아옵니다.



일서리 노래


치르륵치르륵 치르륵치르륵

새벽부터 내리는 호우특보의 장맛비를 헤치고


일터로 간다, 나는야


하루 일당의 숭고함과 절박함을 위해 치르륵치르륵

마다치 않고 빗속을 가게 될 줄은


동댕이쳐진 실패 닮은 평생임을 눈치채고서도, 짐짓 그럴 리 없다는 듯

죽으면 맛도 없어지는 놀래미처럼 몸을 움직여 꾸역꾸역


살고 살고 살아가리


태양은 늘 멀고 눈부신 그대련만

퀴퀴한 이부자리 위에서도 손가락 박자를 타게 만들며

생활은 거리의 음악패같이 졸라 대고


넘으며 넘으며 살아가리

지금은 비록 일당 벌러 장맛비 속에

여의치 않은 여정을 가지만 치르륵치르륵

빗소리도 가을 벌레만큼 울어라


어느 낭떠러지에서 돌연 ㄱ자로 꺾여 구르더라도


그날까지는 사랑하는 측은한 얼굴들이여

다정하지만 손길이 거칠어진 일손들이여


서리나게 몸서리나게 살아가리



주륵주륵 비가 내립니다.

일터에 가기 위해 집을 나선 시인의 양말은 금방 젖어버립니다.

버스에 타기 위해 검은 우산을 접고 교통카드를 단말기에 대니 '띡' 소리가 울립니다.


그날따라 태양은 늘 멀고

행선지는 다른 곳 아닌 지극한 현실의 바닥 그곳이이지요


뜀박질에서 느끼는 신명처럼

시인도 출근길에서 꾸역꾸역 살아내는 일상의 리듬을 찾아냅니다.


현실은 거리 음악패처럼 신명나게 삶을 졸라댑니다.

그렇게 절박하게 졸라대니 손가락이라도 까딱할 수밖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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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는 글을 씁니다.

언어는 상반되는 두 가지의 길로 우리를 이끕니다.

실현을 위한 계획, 

그리고 쓴 만큼 공허해지는 존재



글자 선인장


눈두덩을 태우는 눈물을 말려 주었다

자국을 남기는 상처를 만져 주었다

짠짓내 나는 푸념을 들어 주었다

찝찔하게 씹히는 증오의 말을 걸러 주었다

살의의 독을 빨아먹어 주었다

글자들이 들들들 내 영양분을 갈아 마셨다


글자들이 씌어질 때마다

나는 묽어져 갔다

내가 쓴 글자조차 나를 알아보지 못한다


글자는 내 영혼을 낱낱이 회양목에 새겼다

진흙으로 찍어 찌끄러기를 거둬 간다면서

그 찌끄러기 속에 채 깨어나지 못하고 있던 영혼의 유충까지도


글자는 말할 것이다

진흙의 거머쥐는 힘이 셌노라고


나는 글자에게 물을 것인가,

곪지 않게 나를 씻어 준 것인지

내가 푸실푸실 글자를 흘린 것인지

글자가 세상을 균으로 덮은 것인지

그 글자를 내가 사주한 것인지


씌어진 글자들의 양만큼

대기는 푹하게 붐비고

나는 휑하다는 것,

이 구멍이 태초일 수도 폐허일 수도 있다는 것



나는 말을 합니다.

즐겁기 위해 말을 하고

사랑을 표현하기 위해 말을 하고

돈을 벌기 위해 말을 하고

돈을 벌 수 있는 관계를 만들기 위해 말을 하고

대외적인 시선과 활동의 지속을 위해 말을 합니다.


나는 시와 글자를 씁니다.

표현의 방식을 얻기 위해 시를 사용합니다.


의문이 생깁니다.

내가 만들어낸 말과 시는 과연 어여쁜 존재일까.

냄새나는 고름인가.

생채기가 덧나 힘들었던 만큼 나오는 게 '시'라고 했던가. 그말이 맞다면 나의 시는 '고름'일 텐데.

염증이 있던 곳은 조금씩 다른 살들로 차오르고 있다면 그것이 곧 정신과 육체의 '노화'일 텐데.


나를 씻어주는 글자가 있긴 한 걸까요..



사실 시는 어여쁘지 않습니다.


다만 '진실'될 뿐입니다.



펜의 이중생활


거짓말은 하지 말자고 했다

밖을 나서면 사소한 거짓들이 있었으나

종이한테만은 거짓을 말하지 않기로 했다


종이에게서 멀어지면 나는 입을 다물거나 종이 몰래 웃었다

웃는 얼굴로만 바깥세상으로 나갈 수 있었다

매끈한 플라스틱 내 몸체는 늘 별일이 없었다


하지만 볼펜 똥을 참지 못하는 펜 심이

종이를 짓찧는 밤들이 계속되었다


세상은 플라스틱 나를 환대하고

종이에게 나는 볼펜 똥만 덕지덕지 묻히고 마는 넌더리일 뿐이었다.




그렇습니다. 

나는 미안한 대상에게 어여쁘다는 말을 희석합니다.

종이와 펜과 힘없는 생명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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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란, 다르게 또 같이 있을 수 있다는 희망"


시를 전하는 시와 강아지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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